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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겨운 고향
  • 5일장 서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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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 번 손길로 탄생한 안동포 千年의 혼이 담기다.

    5일장 서던 날

    아지매 왔니껴? 밥은 자셨니껴? 오랫만이씨더...

    누구나 고향을 가슴에 안고 살아갑니다. 어릴적 어머니 손잡고 장날 구경가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저마다 이고 지고 장터에 모여 팔고사고 이웃의 안부를 묻고 웃음과 정으로 인심을 나누 던 우리네 시골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 아니라 삶의 중심이 이었습니다.

    우리 안동의 5일장은 아직도 한복 바지저고리에 갓쓴 어른들을 만나실 수 있고 안동포로 한복을 입은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선비 문화와 전통이 살아있는 안동은 특유의 ‘껴‘,‘더‘ 로 끝나는 사투리가 더욱 정겹습니다.

    안동지방 특유의 '껴', '더'로 끝나는 사투리가 더욱 정겹습니다.

    5일장은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단어입니다.
    여기에서 5일장이란 5일마다 한번씩 시장을 여는 재래 장터로, 농민 수공업자 등 직접 생산자가 일정한 날짜와 장소에서 서로 물품을 교환하는 농촌의 정기시를 말합니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5일장은 조선시대에 나타났습니다.

    15세기 말 남부지방에서 개설되기 시작한 장시(지금의 시장)는 임진왜란을 경과하면서 그 수가 증가하였는데, 17세기 후반 이후 열흘장이었던 장시가 대부분 5일장으로 바뀌어, 전국의 장시는 한 달에 여섯 번 열리는 5일장 체제로 단일화되었습니다. 5일장은 군마다 보통 3개소에서 많으면 4∼5개소로 서로 다른 날짜에 번갈아 열렸으므로 그 지방주민들은 한달에 18회 이상 장을 볼 수 있는 셈이었습니다.

    5일장은 지역사람들에게 상설시장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이 5일장체계의 형성은 적어도 한 군의 범위에서 교환이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하나의 지역적 시장권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5일장은 이후 20세기 말까지 꾸준한 생명력을 가지고 자생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도시화와 산업화에 밀려 거의 옛 모습을 상실한 체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