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유래
행정구역상의 금소 1, 2리가 합쳐 하나의 자연마을을 이룬 곳이 금소리입니다.
마을에서 건너편에 있는 비봉산을 바라보면 봉황의 형태를 한 비봉산의 산봉우리들이 금소마을을 향해 날아오는 듯한 형국이라고 하네요.
전설속의 짐승인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봉황이 앉아 머무는 오동나무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거문고를 만드는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비봉산 아래에는 오동 소라는 소가 있고 또 마을 뒷산에는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습니다.
비봉산과 오동소, 그리고 대나무숲....그리고 거문고. 뭔가 연관관계가 있는 것 같지는 않나요?
사실 금소라는 마을명도 이런 전설과 연관이 있답니다. 비봉산 꼭대기에서 이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을 앞 들판을 흐르는 길안천이 비단 폭을 펼쳐 놓은 듯이 물이 흐르므로 금수(錦水) 또는 금양이라 불리다가 비봉산 아래에 있는 오동수(梧桐藪)에 거문고가 있어야 부합이 된다는 설 때문에 금소(거문고 琴, 풍류 韶) 로 개칭되었다고 하네요.
옛날에 일정한 거리마다 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역을 두었다 하여 금소역촌, 역마라 불리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금소리에는 212가구에 561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주민의 절반 정도가 예천임씨입니다. 예천임씨는 조선 선조 때에 이 마을에 입향하였다고 하며 입향조(入鄕祖)는 임억숙(林億淑) 선생이라고 합니다. 이 마을에는 지애밟기란 민속놀이가 행해졌으며 안동의 특산물인 안동포가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마을을 다니다 보면 어르신들이 옛 지명을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소마을에도 고유한 옛 지명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순수한 우리말로 붙여진 정겨운 지명들을 한번 알아볼까요?